나에게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는 낯설게만 들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만 같다.
그러나 언젠가 제 명을 다하면 이 삶과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하고
불의의 사고로 그 인사마저 못하고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 목숨이다.
나에게는 살면서 두 번의 큰 죽음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 데..그 때만 해도 학교 급식이
없었던 때라 반에는 도시락 파로 구분 지어지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단짝은 아니었지만 함께 도시락을 먹는 친구였고
점심시간이면 같이 고무줄과 공기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성실하던 친구가 결석을 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친구는 몇 명의 아이를 해한 흉악한 유괴범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체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많은 아이를 너무나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유괴범의 수법이 온 언론에 들어나면서
부모님은 물론....담임 선생님, 우리 반 친구들, 동네 어른들까지 한동안 슬픔에 빠져 지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밥 먹고 뛰놀던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놓인 국화를 보면서도 친구가 곧 국화 대신 자리를 채워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두 번째는 삼년 전에 할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을 때다.
그 옛날, 180이 다 되는 키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던 전북 군수라는 직함에,
소주와 양주, 폭탄주까지 넘나드는 엄청난 술 실력까지.
매년 설과 추석 때 내려가면 할아버지를 찾는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명절 선물은 창고 방을 가득 채우고도 넣을 공간이 없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큰소리 치셨고
손자, 손녀들에게 항상 용돈도 후하게 주셨던 할아버지.
그러나 대장군 같던 할어버지도 무서운 병마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체중이 20킬로 이상 줄고..사람도 거의 못 알아보던 마지막에..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아 드리자 가장 예뻐했던 큰손녀라고 알아보시는 것을 보고
어찌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지..
염을 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만진, 할아버지의 몸과 손은 방금까지 살아있던
사람의 몸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차갑고 딱딱했다.
그 정정하던 분이 그리 돌아가셨다는 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이미 어른이 되었던 때라 죽음이 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 그째처럼 마음은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명절은 너무 쓸쓸하고 익숙지 않아서..
할어버지를 자꾸만 더 그립게 한다..얼마 전에 추석 때도 그랬고..
이제는 꿈에 잘 나오지 않지만 그 뒤로 친구와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었다.
다행히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건강히 잘 지내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홍조 띤 미소가 나를 안심시켰다.
잘 사는 것만큼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아직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게 사람 운명이라면
이 모든 순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갑자기 절실해진다.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감사하며 살고 싶은 마음..
이런 좋은 감정만 갖고 살기에도 너무 짧고 유한한 인간 삶이니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음 다가오는 죽음은 준비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고 슬프기만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조문란 뒤 식사 하면서 서로
즐겁게 대화하고 인사하는 어른들을 보면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도 같고..
그나저나..너무 무거운 이야기라서..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놨는데..
그래서 글이 이리, 저리 많이 치우쳐졌고 정리도 잘 안된다.
이해해서 읽어주시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만 같다.
그러나 언젠가 제 명을 다하면 이 삶과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하고
불의의 사고로 그 인사마저 못하고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 목숨이다.
나에게는 살면서 두 번의 큰 죽음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 데..그 때만 해도 학교 급식이
없었던 때라 반에는 도시락 파로 구분 지어지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단짝은 아니었지만 함께 도시락을 먹는 친구였고
점심시간이면 같이 고무줄과 공기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성실하던 친구가 결석을 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친구는 몇 명의 아이를 해한 흉악한 유괴범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체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많은 아이를 너무나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유괴범의 수법이 온 언론에 들어나면서
부모님은 물론....담임 선생님, 우리 반 친구들, 동네 어른들까지 한동안 슬픔에 빠져 지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밥 먹고 뛰놀던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놓인 국화를 보면서도 친구가 곧 국화 대신 자리를 채워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두 번째는 삼년 전에 할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을 때다.
그 옛날, 180이 다 되는 키에, 많은 사람을 거느리던 전북 군수라는 직함에,
소주와 양주, 폭탄주까지 넘나드는 엄청난 술 실력까지.
매년 설과 추석 때 내려가면 할아버지를 찾는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명절 선물은 창고 방을 가득 채우고도 넣을 공간이 없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큰소리 치셨고
손자, 손녀들에게 항상 용돈도 후하게 주셨던 할아버지.
그러나 대장군 같던 할어버지도 무서운 병마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체중이 20킬로 이상 줄고..사람도 거의 못 알아보던 마지막에..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아 드리자 가장 예뻐했던 큰손녀라고 알아보시는 것을 보고
어찌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지..
염을 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만진, 할아버지의 몸과 손은 방금까지 살아있던
사람의 몸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차갑고 딱딱했다.
그 정정하던 분이 그리 돌아가셨다는 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이미 어른이 되었던 때라 죽음이 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오래전 그째처럼 마음은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명절은 너무 쓸쓸하고 익숙지 않아서..
할어버지를 자꾸만 더 그립게 한다..얼마 전에 추석 때도 그랬고..
이제는 꿈에 잘 나오지 않지만 그 뒤로 친구와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었다.
다행히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건강히 잘 지내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홍조 띤 미소가 나를 안심시켰다.
잘 사는 것만큼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아직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게 사람 운명이라면
이 모든 순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갑자기 절실해진다.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감사하며 살고 싶은 마음..
이런 좋은 감정만 갖고 살기에도 너무 짧고 유한한 인간 삶이니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음 다가오는 죽음은 준비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고 슬프기만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조문란 뒤 식사 하면서 서로
즐겁게 대화하고 인사하는 어른들을 보면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도 같고..
그나저나..너무 무거운 이야기라서..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놨는데..
그래서 글이 이리, 저리 많이 치우쳐졌고 정리도 잘 안된다.
이해해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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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문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수업 중에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던 것 같아요.)
괜히 몸서리 쳐지면서 불안한 마음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친구가 일 하는 학교 매점으로 뛰어갔어요.
야간수업 듣는 친군데, 근로장학생이라 매점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매점 아저씨가 눈꼬리가 축 쳐진 채,
너희들도 알고 왔구나 하시는데 정말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 앉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체육대회 때문에 농구경기 예선 치르다가
경기 중에 심장마비로, 그랬거든요.
이런저런 절차를 마치고, 안치실에 누워 있는 친구의 몸을 내 손으로 끌어내 얼굴을 보는데,
그냥 깊게 잠든 것 같기만 하더라구요.
차가운 얼굴을 만져보고 나서야, 정말이구나 싶었어요.
화장터에서 화장이 시작되기 전까지 많이 울기도 하고 미안하고 가슴 아프고 그랬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사회 생활 하면서 부음 소식은 더 많이 듣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익숙해 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문을 하고, 상주를 다독이고
그러고나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얼굴로
식사를 하고 소주 한 잔 들이키는 그 분들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지만
죽음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고 두려워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봐요. 다희양 말처럼, 즐겁게 살기만도 짧은 인생이니까.
쓰다보니 나도 주절주절 말이 많았어요. ^^;
와 언니 긴 글 고마워요..^-^
자기 전에 한번 더 들어와봤는데..값진 선물이 있네요-
저도 안 믿기다가..차가운 몸을 만지니까 그때서야 그런거구나..싶었는데-
선산에 할아버지 묻으면서,,그 곳에 그렇게 묻히시면
너무나 춥고 외로울 것 같아서 맘이 너무 아팠어요-
조금 더 익숙해지고 조금 더 차분해질순 있겠지만
역시..슬픈일이겠죠.
흐흐, 주워진 삶을 고맙게..열심히..^-^..
죽음에 익숙해지는건 좀 슬플거 같아요. 어쩌다보니 벌써 발인까지 따라가서 관까지 직접 메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응이 안되네요. :(
열심히 살아요. 언제나 죽음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고, 언제나 반갑지 않은 것이고, 언제나 피하고 싶은 건데.. 굳이 차분하게 맞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없을거 같아요. 결국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될테니.. 기왕이면 웃으면서 보내줘야 하는건 맞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어떻게 되더라구요. :)
그러니까 다희씨도 열심히 사세요. ㅎㅎ
익숙해진다는 개념자체가 성립안되는..
1년 전을, 한달 전을, 심지어 어제 마저도
후회하며 살잖아요-
어떤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어도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보람을 느끼고 나중에도 좋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듯이
우리 사는 것도 그런거 아닐까요..^-^
이뉴님도요-!
저는 저를 어릴때부터 키우다시피 해주신 외할머님의 죽음이 정말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어요.지금도 가끔 힘들거나 할 때는 생각나더라고요.마음에 늘 의지가 되는 강한분이셨거든요.요즘은 기분도 날도 휑해서그런지 더욱 기억이나요.다희님 글 덕분에 더욱 더 추억하게 되네요.^^
저의 외할머니는 제가 세살 때 돌아가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에 반해..할아버지는 가까이서 모셨고,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그립기도 하고, 더 많이 추억하게 되고..
키우다시피 해주시던 외할머니라면 더 그렇겠어요
왜..일기란 것도 힘들어야 매일 쓰게 되잖아요-
행복하고 웃을 때는 일기를 멀리하게 되죠-
사람 그리운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기적이게도 내가 즐거울 땐 생각 안나다가
기분이 울적해지면 보고싶고 그립고..^-^
저도 사랑한는 사람들을 많이 잃어서
가끔씩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특히 가족의 경우는 다희님처럼 명절이 되면 견딜 수가 없죠.
이번 추억도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멀쩡하게 살아보지만,
완전히 괜찮아질수는 없는게 이런 기억인가봐요..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항상 살아있을때 잘 해야한다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잃고나면 또 더 잘하지 못했음에 후회하곤 하죠.사람이란..그런것 같아요.
역시 사람은 사람을 더 치열하게 사랑해줘야 해요.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 할 수 있도록..
악.. 추억이 아니라 추석이요^-^;;
댓글수정이 안되네요..^-^;;;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예전처럼 시끌벅적하지도,
바둑판이 벌어지지도, 누가 슈퍼에 데려가서 먹을껄 사주지도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인데도..ㅎㅎ) 않네요,
명절 때 그 부재감을 견디기가 힘들죠..
나중에 후회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짐하면서 살아봐요^-^
죽음 보다는 .
전 다시는 못 본다는.
너무나 보고 싶은데 볼수가 없다는.
불가능이 무섭더라구요.
오늘은 정말 비가 왔으면 좋겠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없잖아요.
그런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절 힘들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 노력한다고 될 게 아닌 일들
무기력하고 두렵죠-
공부나, 일 같은 것은 내 노력여하에 달렸지만
사람 일은 통제 밖의 일이 많으니까-
그런데..
"보고 싶은데 볼수가 없데" 하시니
갑자기 빅뱅의 거짓말이...죄송;;
상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이 탄생과 죽음, 죽음과 탄생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들이 있어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기쁨과 슬픔을 거듭하게 만드나봐요. 머리에 생각을 집어 넣기도 전에 죽음이란 것을 본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탄생과 죽음에 대한 희열과 눈물, 아픔마져 희미해져 갑니다만, 그것들이 있어 삶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평생 모은 돈을 죽음의 길로 떠날때 쓰던데, 그것을 보면 죽음이란 길이 그리 슬픈 길만은 아닌것 같기도 해요. 즐겁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유서쓰기 라는 것도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구요. 머리아프니 그냥 순간순간을 바람이나 먼지 마시듯 즐기고 살렵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답이 없잖아요-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
저도 티비에서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캠프를 본 적이 있는데
참여한 사람들은 유서도 써보고,
죽었다는 가정아래 관에도 들어가보게 되는데
언뜻 듣기에는 웃음 날 것 같지만 다 진지한 표정에
특히 여자분들은 많이 울더라구요-
그래도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는
오히려 삶에 대한 열의를 품는 모습을 보니.
꼭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회의적인 결말을 부르는 것은 아닌듯.
진지하게 좀 더 값지게 하루하루를 쓰기..^-^
하루키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던 구절이 떠오르네요.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건 어떤 작품인가요? 읽어보고 싶어요
유명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실 개똥벌레라는 단편에도 나오는 구절인데, 개똥벌레라는 단편 자체가 장편으로 확장된 게 노르웨이의 숲이라. 하루키의 작품들은 감성적이고 순간의 느낌에 치중하는 편이라 읽고 나면 허탈하긴 한데, 작품 중에 아주 제대로 사람 뒤통수를 찌르르 하게 울리는 문장들이 있어서 즐기지요.
책을 대충 읽었나봐요;;-_-
뒤통수에 찌르르 감올 때까지 다시 읽어봐야겠어요-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