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는 이상할 정도로 거리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아요.
명동과 시청 부근은 백화점의 LED 장식과 루체비스타로 그나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캐롤 듣기도 힘들고 겨울이면 보이는 정겨운 구세군 모습도 한번 밖에 보지 못했네요.
뉴스를 보니까 이번 해는 성금을 얼마 못 걷어서 예외적으로 모금 기간을 연장한다하죠?
아무리 연말 분위기가 안 나는 거리라해도 삼 년 전만 해도 마음 속으로는 크리스마스까지의
d-day를 세던 저였는데 삼 년 만에 삼십 년 세월이 흐른 것처럼 별 기대도 하지 않는 저의 모습이라니.

주변에서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얼마 전 치뤘던 대선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매년 12월이면 보이는 크리스마스 풍경 대신 거리 유세가 그 빈자리를 채웠고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바람에 자포자기와 걱정만이 그 자리에 남았으니까요.

거기다가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해도 회사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만 촐랑댈 뿐 머리와 손은 다른 때와 다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고요.
심지어 이브 날인 어제는 그림동화 신문광고를 만드느라 긴장 상태로
야근까지 했더니 정작 놀아야 할 때는 기진맥진상태...;;

그리고 언젠가부터 사라진 집안의 트리도 한몫을 했네요.
첫눈이 내리면 창고에 콕 박혀있던 트리를 꺼내 먼지를 털고, 전선을 감고, 왕방울과 직접 만든 모빌들도 달고...
한밤중에 잠을 뒤척이다가도 반짝거리는 트리를 보면 악몽을 꾼 가슴마저 쓸어내릴 수 있었거든요.
십년 넘게 쓴 트리를 낡아서 버린 후로, 비싼 돈 들이기는 아까워서 없는 채로 지냈더니 트리 없이 지낸 지도 꽤 됐네요.

생각해보면 산타를 믿지 않던 때부터 크리스마스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 때쯤, 동네에 처음 편의점이란 게 들어섰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방울하고 머리핀을 발견했는데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그게 놓여있는 거예요.
우리 집은 굴뚝도 없는 데 뚱뚱한 산타가 어떤 구멍으로 들어왔을까.
이거 갖고 싶은 건 엄마밖에 모르는 데 산타는 어떻게 내 맘을 안 걸까.
그리고 이 포장지는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건데 산타 사는 동네도 이걸 쓸까?

머릿 속에 산타에 관한 퀘스쳔 마크가 꽝꽝 찍혔지만, 그 후로도 몇 년 간 산타를 믿었어요.
아마도 산타를 믿지 않으면 선물을 못 받을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 조용히 방문을 열고 우리들 머리에 선물을 하나씩 놓는
엄마를 실눈으로 지켜본 후로 산타는 더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 후로 산타가 머리 맡에 선물을 놓고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다 큰 사람이 산타를 믿는다면 그처럼 우스꽝스러운 일도 없는 것처럼 크리스마스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어릴 적 믿었던 산타와 크리스마스의 기적 대신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편한 옷을 훌러덩 벗고
찾아 입는 츄리닝 바지와 박스티처럼 편하고 포근한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휴일.
가슴 벅찰 것 같은 두근거림과 기대감 대신 일상의 편안함이 자리잡는 시간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안도감과 코 끝 찡해질만큼 커져오는 고마움...

이 정도면 크리스마스의 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목도리도 다 떠서 목에 감아줬으니 잠 좀 편히 자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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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ikibossa.tistory.com BlogIcon kikibossa 2007/12/25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12시 전이니 메리크리스마스~^-^

  2. Favicon of http://sampleh.tistory.com BlogIcon M.Han 2007/12/26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Zestor님 블로그에서 목도리 봤어요. 멋지더군요! ^^

  3. pesas 2007/12/26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 얼마 더 못 살았지만, 살아보니 왠지 세상이 점차 그 분위기를 잃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분위기를 잃는 거 같더군요. 엊그제 만난 어린 아이들은 분위기 최고로 신난다던데 --;

  4. Favicon of http://alonelydejavu.byus.net BlogIcon dEjaVu 2007/12/26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치원 다닐 때 이미 환상이 깨져버리고 나니까
    쉬는날 이상의 의미가 안 생기더라. 참, 씁쓸하지.

    크리스마스 때, 34번가의 기적 해주던데,
    언제봐도 재밌더라. 물론, 크리스마스 때여서 더 그랬겠지만.

    아, 벌써 쉬는 날 다 지나가버리다니-
    주말을 목 빼고 기다려봐야겠다. 흐흐.

    • Favicon of http://kimdahee.com/t10 BlogIcon 다희 2007/12/27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환상은 깨졌는데, 선물 못 받을까봐 억지로 믿었어..ㅋㅋㅋ
      나홀로 집에도 언제봐도 재밌든데~

      동생이 가족들 다 보는 곳에 카드를 붙여놨는데
      모두들 메리크리스마스~ 그리고 즐거운 겨울방학^-^
      괄호치고 세명만...-_- ( 나도 방학...;; )
      겨울방학이 없으니 크리스마스도 대선도 설도, 직장인에게는 '휴일'로 다가올 뿐...ㅜ

  5. Favicon of http://www.ufosun.com BlogIcon ufo 2007/12/26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방송에서 며칠전 ELF라는 영화하던데..
    거기 보니까 산타가 진짜 있던데요?
    다행히 우리 아들은 산타를 믿습니다...

    살다보면 사실과 달라도 믿고 싶은게 참..많지요^^

    • Favicon of http://kimdahee.com/t10 BlogIcon 다희 2007/12/27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엘프? ㅎㅎㅎ
      아직은 현실을 다 믿기는 싫은데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중에요.
      2007년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었거든요..

  6. Favicon of http://www.designer-handbags-jewelry.com BlogIcon knockoff handbags 2011/12/04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앞선 미래 걱정에
    현재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이미 사진 찍다가 비바람을 맞아버렸네요-_-;;
    콜록콜록;;

  7. Favicon of http://www.cheapknockoffhandbags.net BlogIcon knockoff handbags 2012/01/23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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